[Insight]산돌에 배 타지 않고 갈 수 있는 섬이 있다

산돌의 오피스 공간디자인


마감이 코앞인데 난데없이 책상 위 물건들은 왜 이리 신경이 쓰일까요?
각 잡고 일 좀 해보려는데 오늘따라 왕성한 옆 부서의 티키타카가 귀 속에 콕콕 박혀 들립니다. 
우리는 알고 있죠. 일을 잘하는 데는 공간의 조건도 한몫한다는 것을. 

 

일을 하다 보면 참 다양한 상황을 접하는데 2년이 넘는 전 세계적 팬데믹 상황에 우리는 더 많은 경우의 수를 만나게 되었어요. 모여서 일할 수 없게 되면서 이제는 익숙해진 원격 회의들, 주거와 업무공간의 경계도 사라졌고, 개인의 일하기 방식은  물리적 시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져서 더욱 개인화되었습니다. 동시에 복도에서 마주치던 옆 부서 누군가와는 몇 달 동안 눈인사 한번 나눈 적이 없다는 것에 조금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사실 산돌은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부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원격근무와 시차 출퇴근 제도가 있었어요. 하지만 코로나 이후 원격근무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면서 ‘어떻게 일을 더 즐겁게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되었습니다. 

기업의 공간은 기업의 문화를 반영하고 스며들 수 있는 좋은 매개체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일하기 방식’이 변하면서 ‘우리를 아우르는 공간의 변화’는 필연적이었다 하겠죠.

 


우리에게 필요했던 변화

  1. 장기 원격근무는 공간의 효율을 현저히 떨어뜨렸습니다. 몇 달 동안 비어있는 직원들의 공간과 매달 신규 입사자들이 몰리는 부서의 불균형이 심했어요. 제한된 공간을 보다 현명하게 쓸 수 있어야 했습니다. 

  2. 결코 큰 규모의 기업이 아닌 산돌에도 5개의 그룹과 실, 14개의 팀이 있습니다. 부서의 종류만큼 업무의 특성도 방식도 모두 다르죠. 따로 또 같이 일하는 우리에게 어울리는 구조가 필요했습니다. 

  3. 코로나 학번처럼 코로나 사번도 있다는 사실 아세요? 설렘 반 걱정 반의 입사 첫날, 피플팀 팀장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는 슬픈 코로나 사번의 이야기.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더해줄 밍글링* 과제가 있었습니다. 
    *산돌은 밍글링이라는 가벼운 잡담과 동료들과의 어울림 등을 통해 일이 시작되고 더 잘될 수 있도록 노력해요

이러한 고민 끝에 우리는 ‘어디서 일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디서든 일할 수 있어야 한다’를 실현하기 위한 공간의 컨셉을 ‘닫힘과 열림'에 두고 공간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닫힘과 열림'이라는 공존할 수 없는 이 두 가지의 개념은 과거 팀 단위로 요새화되었던 오피스의 성격이 개별 프로젝트 베이스로 움직여지고, 동료나 부서 간의 벽은 낮추되 개별 업무 방식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섬세하게 접근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무엇을 닫고 무엇을 열까?

1. 구분 짓기

비즈니스 그룹은 열띤 대화가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프로젝트의 앞머리에서 가장 다양한 부서와 만나고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곳이죠. 아마 회의실 의자의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 거예요.

경영전략 그룹은 항상 뒤를 조심해야 합니다. 함부로 열어서는 안되는 문서들을 읽고, 만들죠. 

반면 개발자들은 미동도 없이 앉아 끝이 보이지 않는 코드를 만들고, 폰트 디자이너들은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글립스의 패스를 한땀 한땀 엮고 있습니다. (글립스는 폰트를 제작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이렇게 다양한 팀의 업무 성격에 따라 2개의 큰 오피스로 성격을 구분했습니다. 

보안과 대면 업무가 주축이 된 사무동은 기존 오피스의 성격을 유지한 ‘닫힌 고정형 좌석 오피스’로- 연구 개발 중심의 연구동은 ‘좌석의 제약이 없는 열린 좌석 오피스’로-. 연구동은 그날의 공기, 조명, 온도, 습도, 분위기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모니터 사양별 데스크, 개방형 데스크, 창가 테이블 등 여러 종류의 데스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간의 열림. 개방 오피스

오늘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여린 바람은 창가에서 일하기 딱입니다



2. “저는 오늘 섬에 있습니다”

출근 즈음 부서 메신저 창에 뜨는 메시지입니다. 어떤 유혹과 훼방에도 방해받지 않고 ‘나는 오늘 집중해서 끝내야 한다’는 의지를 담은 챗이죠. 개방형, 자율형 공간이 중심이 되면서 별도의 업무 집중 공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낮은 조도에 밀실처럼 구성된 업무 집중 공간인 섬은 공간 개선 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죠. 

공간의 닫힘. 섬

오늘도 풀부킹된 섬, 휴가시즌에는 진짜 섬으로 떠나길 바래요




섬이라는 이름은 하늘 강당, 숲 카이로프랙틱 룸과 같은 기존 산돌의 자연어 공간*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하게 되었는데 내부 니즈가 많아 언젠간 다도해가 생겨야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산돌 내 공간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것들로 이름 지어졌어요. 사명의 분위기를 우리가 사용하는 공간에도 적용해보자는 취지에서 2020년 성수 사옥으로 이전할 때 만들어졌습니다. 전사 직원이 만날 수 있는 오디토리움은 모두를 안을 수 있는 ‘하늘’, 여직원 휴게실은 솜털 같은 ‘구름', 카이로프랙틱 룸은 산림욕 기분이라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의 ‘숲', 대 회의실은 '해’ 등으로 불려집니다.



자연어로 명명된 사내 공간들




 

3. 팬데믹 시대의 밍글링

오피스에 근무하는 동안에라도 자연스러운 밍글링이 될 수 있도록 시선을 막던 높은 수납 구조물들을 모두 없앴습니다.

대신 모든 수납공간의 높이를 허리선에 맞춰 민첩한 짧은 논의를 할 수 있고, 때론 서서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소규모 밍글링 터도 만들었습니다. 품에 꽉 차는 둥근 조명이 떠있는 ‘달’인데요. 밝은 달을 술잔에 담아 마시며 시를 읊던 옛 선현들을 따라 저희들은 하이볼을 손에 들고 보드게임을 하며 풍류를 즐깁니다.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다양한 주종은 교류가 부족했던 동료들과의 어색함을 없애주는 마중물이라 할까요?

직원들은 물론 파트너사와도 부담없이 '달'에서 만나요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시대별 타자기







 

4. 내 일은 내가 책임진다

누구도 업무처에 대한 가이드나 제약은 두지 않습니다. ‘어디서 일하느냐’보다 ‘어떻게 잘 일하는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개별적으로 매주 또는 매달 업무 계획을 시스템을 이용해 부서장과 동료들에게 공유하고 시의적절하게 오피스 내/외부에서 업무를 봅니다.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한 안건들은 모두의 일정이 공유되어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대면회의가 가능합니다. 반면 오피스 이동시간이 절약되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개인 활동 시간이 늘어나 삶과 일의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제보들이 속속 들려와요. 한 공간에 있지 않게 되면서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은 업무 솔루션 시스템을 정책에 도입하기도 하고, 기민한 소통으로 보완 해결하고 있습니다. 업무를 보조하는 방식들이 달라질 뿐, 일은 더 깊게 고민하고 성과는 더 커지기를 바라는 모두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ing 입니다

공사는 종료되었지만 산돌의 오피스 공간 개선은 계속 진행 중입니다. 

사실 업무 방식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정책이 생겨나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적응도 해야 해요.

아직 안정화되지 않은 시스템도 도입되어야 하고, 곳곳에 아이디어로만 묻혀있는 개선점들을 실현시켜야 하죠. 의도처럼 사용되고 있지 못한 공간의 편의성도 높여야 하고, 한정된 예산으로 범위에 포함할 수 없었던 공간도 눈에 밟힙니다. 

공간 디자인을 넘어 여전히 오프라인에서 여러 사람이 만나 생성할 수 있던 유대감을 온라인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에요. 다행히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있는 시점이라 조금씩 오프라인 밍글링 기회들을 도입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 공간의 제약 없이 동료들과의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방식도 고심하고 있습니다. 

지난한 과정이지만 이 모든 것이 경험을 통한 진화라고 생각합니다. 

첫 눈이 내릴 즈음 산돌의 공간은 조금 더 확장될 예정이에요. 어떻게 우리다움을 계속 소통하고 연결할 수 있을까? 끝없는 고민을 진득하게 해볼 예정입니다.



안예진
디자인경영그룹 그룹장
디자인 경험으로 답을 찾는 브랜드 기획자.
완전한 몰입을 꿈 꿉니다.

Hoping to make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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