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e branding]글씨겠거니 했더니 묵직한 삶의 흔적이었다

글씨에 묻어있는 삶의 흔적 「Sandoll 칠성조선소」


콧노래 흥얼거리며 속초로 출근

2018년 봄날 아버지의 글씨로 폰트를 만들고 싶다는 아들(클라이언트)을 만났다. 은퇴한 아버지의 조선소를 카페로 되살린 아들은 아버지의 배가 아닌 글씨에서 조선소의 정체성을 찾았다. 산돌의 디자이너들은 칠성조선소에 담긴 사람과 공간의 스토리에 스며들었고, 다른 동료를 데리고 조선소가 있는 속초로 우르르 떠났다. 



농밀한 글씨의 유혹

바다를 바라보는 칠성조선소 건물. 옆 건물에 아담하게 마련된 박물관에는 아버지의 손글씨도 있었다. 일상에서 묻어나는 습관에서 글씨를 좋아하는 분들 특유의 유희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엔 또 뭐가 나올지 궁금해졌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감지되었다.

공간 곳곳에서 아버님 글자의 뼈대가 보였다.


클라이언트의 안내로 조선소 끝자락에서 기다리시던 아버님을 만나 뵈었다. 쑥스러워 하시며 머뭇거리시더니 주섬주섬 옛 이야기를 꺼내셨다. 배 만들기의 마지막 과정은 배의 이름 써넣는 것이란다. 이름이 있어야 서류 등록 절차까지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생신고와 닮았다. 이때 선주는 자기 배를 바라보며 안전과 풍어(豊漁)를 기원한다. 다른 곳에서 만든 배인데도 이름만큼은 꼭 아버지께 써달라고 부탁했다는 분들이 있었다고 한다.

구성진 이야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 한 글자 써달라고 졸라봤다. “이게 뭐라고 참...” 하시며 써주신 페인트붓 글씨. 대단했다. 


디자이너는 페인트 납작붓을 어떤 순서와 속도로 써 내려가는지까지 알아야 글씨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속초에 오기 전, 사진과 함께 걸쭉한 페인트를 납작붓에 묻혀서 쓴 글씨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는 쓴 것인지 그린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쓴 것이라면 순서대로 한 번에 써 내려갔을 것이고, 그린 것이라면 덧칠을 해가며 테두리를 섬세하게 다듬었을 것이다. 그걸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부탁드린 거였다. 과연 쓰실까, 그리실까. 아버님은 예상을 깨고 쓰기 반 그리기 반으로 마무리하셨다. 서예에만 익숙하던 디자이너에게는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쓰기 방법이었다. 아버님만의 독창적인 방법인가 싶었다.



화들짝 놀란 발견, 속초 스타일

칠성조선소를 떠나 동네 슈퍼를 지나다 깜짝 놀랄 글씨를 발견했다. 아버님은 누구에게 글자를 배운 적은 없다고 하셨지만, 마치 아버님과 같은 스승에게 배운 듯한 페인트 납작붓 글씨체를 마주했다. 특히 슈퍼의 ‘ㅍ'과 그 옆의 쉼표는 백미였다. 누가 이런 호방한 'ㅍ’을 쓸 것이며 누가 간판에 쉼표를 넣겠는가. 이 힘과 여유는 무엇인가. 누가 쓰셨을까. 아마 다른 곳에도 쓰셨겠지? 그렇게 알게 된 페인트 납작붓 글씨체는 이곳 분들이 알게 모르게 공유하며 다져온 스타일이었다. 갯바람에 묻어오는 파도 소리와 함께 이곳을 살아온 분들의 삶을 느꼈다. 칠성조선소체는 속초스타일이구나. 



돌아오는 길 생각했다. 직접 와보길 참 잘했구나. 지역색을 담고 있는 스타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글씨겠거니 했더니 묵직한 삶의 흔적이었다. 이걸 어떻게 살리지? 손글씨를 폰트로 만드는 것은 항상 어렵다. 있는 그대로 구현하면 조잡하고 깔끔하게 다듬으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폰트는 몇몇 글자에 딱 맞는 모양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글자를 써도 같은 맛이 나오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칠성조선소는 생각할 것이 더 많다. 난이도가 매우 높은 프로젝트였다. 



막막할 땐, 일단 뭐라도 시작하기!

클라이언트와 상의한 결과 아버님께서 일정한 크기로 오백 여자를 새로 써주시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하나 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역시 어려울 땐 솔직히 대화하고 뭐든 시작하는 게 최고다. Just Do It! 소재도 그대로 살려 나무판에 검정색 페인트와 납작붓으로 써 주셨다. 나중에는 종이에 쓴 글자도 보내주셨다.


요즘 폰트를 만들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디지털 도구로 글자를 그리지만 예전에는 원도(손으로 정교하게 그린 글자)를 디지털로 옮겼다. 아버님이 써주신 글자는 엄밀히 말하면 참고용 자료지만 우린 굳이 원도라고 불렀다. 왠지 그렇게라도 향수에 취하고 싶었다. 원도까지 받았으니 본격적인 디자인 프로세스로 들어갔다. 이제 우리만 잘하면 돼.



한 사람이 써도 다른 글자

원도에는 세 개의 ‘라’와 두 개의 ‘덮'이 있다. 마음에 안 드셨는지 여러 개를 써서 보내주셨다. 이 중 디자이너는 어떤 ‘라'와 '덮’을 골랐을까? 여러글자와 어울리는 구조와 원칙을 찾았을 뿐 어떤 글자도 그대로 참고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원도는 아버님 글씨에 녹아있는 '초성자-중성자-종성자’의 관계를 뜯어보기 위한 자료였다.



새로운 손글씨체 제작 프로세스

산돌 칠성조선소의 제작 프로세스를 간략히 설명하면 “원도에서 뼈대를 추출하여 다시 살을 입히기”로 압축할 수 있다. 뼈대란 긋는 선의 중심을 흐르는 심지 같은 것으로 쓰는 도구나 재료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쓰는 이의 몸속에 담긴 문자적 DNA 같은 것이다.



뼈 맞추기가 끝나면 살을 입힌다. 뼈대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살을 붙이다 뼈대를 수정하고 다시 살도 수정하게 되는 개미지옥에 빠진다. 'ㅣ'의 처음을 결정하면 'ㄱ'의 처음을 고민해야 한다. 한 자씩 보면 다 좋지만 모든 글자에 적용하기 좋은 것을 골라야 한다. 그렇게 새로운 형태를 제안하고 적당한 형태를 선택하며 다듬어 간다.

모음 'ㅣ'의 처음과 맺음은 서로 호응해야 하며 다른 모음과 자음에도 영향을 미치는 폰트의 핵심 요소다

‘ㄱ'의 처음에 얼마나 힘을 줄 것인가. ‘ㅏ’의 처음, 'ㄱ’의 맺음, 'ㅏ'의 맺음과 자연스럽게 호응해야 한다.


낱말을 이뤘을 때의 모양, 글줄을 이뤘을 때의 모양을 생각하며 계속 고쳐간다. 글자가 보이면 안 되고 칠성조선체가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씬'의 'ㄴ’받침은 흘림체로 되어 있다. 얼마나 얇게 처리할 것인가. 너무 얇으면 작게 썼을 때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깔끔하게 안 보이면 참 좋겠으나 지저분하게 잔상이 남는 것은 싫었다. 때로는 싫어하는 게 중요하다. 그만큼 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를 통한 발표

모든 작업을 마무리하고 2019년 한글날 서울 종로구 Factory2 Seoul 갤러리(https://factory2.kr )에서 <칠성조선소-서체발표> 전시를 했다. 벽에 붙여놓은 「Sandoll 칠성조선소」의 원도를 보니새삼 아름답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자기검열에 들어간다. “폰트도 아름다워야 할텐데…”. 난 너무 봐서 눈이 멀어버렸다. 

원도와 폰트를 견주어보는 것은 재미있다. 디자이너는 부담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이처럼 디자이너의 고통과 번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도 드물다. 서로 닮고 싶었으나 너무 닮아도 안되는 얄궂은 운명. 하나로 똘똘 뭉쳤던 것을 해체하는 것은 마무리의 정석이다. 원도와 폰트를 분리하듯 폰트와 디자이너도 분리한다. 그동안 일심동체 대동단결 동고동락했지만, 이젠 각자의 길을 간다. 아버님은 품 안의 글씨를 디자이너에게 보냈고, 디자이너는 품 안의 폰트를 산돌구름 유저에게 보냈다. 이 때의 마음은 표현하기 어렵다. 잠시라도 시인이 되고 싶다.



원도에서 독립한 폰트의 삶

폰트는 쓰면 쓸수록 새로운 맛이 배어난다. 문장에 따라 글자끼리의 조합이 달라지거니와 크기에 따라 적잖이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Sandoll 칠성조선소」의 맛을 본 분들의 소감도 1년, 3년, 10년… 계속 달라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심우진
산돌연구소 소장
글도 쓰고 글씨도 쓰고 돈도 쓰고, 쓰는 건 다 좋아해요.
취미로 자전거를 타요~ 씨잉씨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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